그 푸른 가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온통 노랑. 이달 말까지 공개되는 홍천 은행나무숲이다. 부지런하고 착한 농부 유기춘씨가 가꾼 은행나무숲이다./박종인 기자

기이한 날씨 때문에 올해는 단풍이 며칠 늦다. 이번 주말부터는 슬슬 동시다발적으로 단풍이 출현한다. 그래서 모았다. 팔도 방방곡곡에 숨어 있는 단풍 명소들.

◇ 홍천 은행나무숲과 56번 국도

대한민국 지자체 가운데 면적으로 으뜸은 강원도 홍천군이다. 약 1818㎢이니, 약 606㎢인 서울 면적의 세 배 땅이 동서로 뻗어 있다. 그 너른 땅을 동과 서로 가로지르는 길이 56번 국도인데,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가을 여행길'로 소문나 있다. 부산에서 함북 온성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7번 국도가 여름 드라이브 코스라면, 가을에는 당연히 이 56번 국도다. 온갖 색깔 단풍과 더 이상 맑을 수 없는 개울과 강이 도로변에 출렁댄다. 홍천군은 이 길에 '구룡령길'이라는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 최고 해발 1000m에 이르는 헤어핀 고개(실핀처럼 360도 구부러진 길)다.

구룡령에 숨어 있는 갈천약수터. 주민들이 돌덩이로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56번 국도 창촌삼거리에서 양양 쪽으로 18km를 가면, 사람들은 눈물 나도록 예쁜 공간으로 틈입하게 된다. 3년 전까지 아무도 몰랐고 아무도 범접하지 못했던 은행나무숲인데, 2010년 이맘때 주인 유기춘(70)씨가 슬그머니 공개했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짙은 노란색 공간은 순식간에 '홍천 10경' 가운데 하나로 등재됐고 올해로 3년째 도로변은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도 가야 한다. 손에 잡히는 바로 코앞에서 대한민국 가을의 정수(精髓)를 맛볼 수 있으니까. 2000그루가 넘는 은행나무가 30년 되도록 너른 들판에서 자라나 지금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창조했다. 눈물까지야 아니겠지만, 감탄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말 메마른 사람이라 장담한다.

주인 유기춘씨 말씀. "아내가 위장이 안 좋아 약수 뜨러 다니다가 봐둔 땅을 사서 은행을 심었다. 자꾸 입장료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도대체 배추밭 지나간다고 돈을 받는 농부가 세상에 어딨나. 여기는 밭이다, 은행 밭." 올해는 지난 1일 개장해 오는 20일에 공식적으로 폐장. 주인장은 "은행잎이 융단처럼 깔리는 30일까지는 열어놓겠다"고 했다. 구경이 끝나면 5분 거리에 있는 오대산내고향식당 필수. 산채정식 1만2000원. (033)435-7787. 주말에 원하는 시각에 먹으려면 예약도 필수.

☞주변 볼거리

●갈천약수: 숲에서 양양 방면으로 20㎞. 운전자들 혼을 빼는 구룡령 너머다. 20분 정도 완만한 길 끝에 있다. 철분이 많아서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맛이 시큼하다. 물도 물이지만, 약수터까지 오르는 완만한 산길이 목적이다. 직립보행이 가능한 누구라도 오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


●미천골 자연휴양림(huyang.go.kr/forest/con tentIntro.action?dprtmId=0112): 또 7㎞만 가면 미천(米川)골 자연휴양림이다. 초입에 있는 선림사지는 1000년 전에 융성했던 절터다. 쓸쓸하고 황량하고 때로는 서럽다. 밥을 지을 때면 개울이 하얗게 됐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절이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았다. 휴양림 내에 있는 펜션타운 1박 강력 추천.

●살둔마을(saldun.invil.org)과 양양 하조대: 미천골에서 나와 동쪽으로 50분이면 바다가 나온다. 양양 하조대다. 하조대 가운데에 있는 바위 더미에 오르면, 파도에 휩쓸린 정신나간 멸치 떼가 매운탕감이 되겠다며 발치에 걸리는 행운도 만날 수 있다. 은행나무숲에 앞서 원당삼거리에서 446번 지방도를 타면 나오는 살둔마을은 정감록에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승지라고 나와 있다. 1985년에 세워진 살둔산장(saldun.co.kr)은 일별할 가치가 있다. 사대부집, 절집, 일본집이 가진 장점만 요모조모 잡아내 만든 희한한 외형은 반드시 구경하자. 이 별유천지비인간에서 하루를 묵으면 뒤로 흐르는 거센 개울과 병풍처럼 서 있는 산들의 주인이 된다.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